“우리 집에서 모여도 괜찮아요~!”
이웃과 모여 김장을 할 공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리 청소도 해야 하고, 필요한 도구를 확인하고, 일부 재료도 받아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사정을 잘 모르는 분께는 선뜻 말을 꺼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이런 어려움은 골목 잔치에 초대하기 위해 만난 김정애 어르신 덕분에 순식간에 해결됐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지 물어보시는 어르신께 “이웃이 모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라고 말씀드리자 큰 고민 없이 “조금 좁아도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모여도 좋아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르신 말씀 듣고 댁을 둘러보니 10명 정도가 모여 김장하고, 식사 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입니다. 오랫동안 김장을 해 온 경험 덕분에 어르신께서는 벌써 근사한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그러면 내가 잘 안 쓰는 방이 두 개 있으니까 저기서는 재료 다듬고,
여기서는 양념 무치면 될 것 같은데, 어때요?
그리고 배추에서 물도 빼야 하니까 욕실은 깨끗하게 락스로 청소해 놓을게요~”
공간을 허락해 주시고,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 주신 어르신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 뒤 골목잔치 당일에 뵙기로 약속했습니다.
“여럿이서 하니까 일도 아니네요”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어르신 댁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기 전부터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립니다. 평소 조용하던 집이 오랜만에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로 떠들썩합니다.
모인 분들과 반가운 인사 나눈 뒤 몇 사람은 양념에 추가로 넣으면 좋을 재료를 사 오기로 하고, 남은 사람들은 배추에서 물을 빼고, 재료를 다듬는 등의 양념 무칠 준비를 합니다. 이 집, 저 집에서 하나씩 가져온 커다란 소쿠리에 배추를 뒤집어 놓고 한참이나 물을 뺍니다. 기다리는 사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시는 어르신들. 이렇게 모여 김장하는 것은 오랜만이라고 하십니다.
지난 골목잔치 때 뵌 적 있는 김정애 어르신과 장화자 어르신은 동네에서 만나게 될 때 간단한 인사를 하며 지낸다고 하십니다. 없던 관계가 형성되었으니 오늘 만남을 통해서 서로 집에 초대해 차도 마시고, 더 많은 이야기 나누는 이웃이 되면 좋겠습니다.
황희자 통장님께서 위아래 놓인 배추의 순서를 바꿔 뒤집을 때쯤 장 보러 간 팀이 돌아왔습니다. 몇 명은 쪽파와 갓을 다듬고, 요리에 자신 있는 김영희 봉사자님은 큰 냄비 가득 수육을 삶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각자 할 수 있을 일을 한 덕분에 금세 양념을 무칠 수 있게 됐습니다.
둥그런 김장 매트를 가운데 놓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양념을 합니다. 어색하게 양념 속을 넣고 있는 제게 한 어르신이 “빠르면서도, 꼼꼼히 잘 넣어야 김장이 맛있게 된다"라고 하십니다. 배추를 한 장씩 들어 올려 꼼꼼히 채워 넣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양념 속을 넣다 보니 준비한 절임배추 60kg가 금세 맛있어 보이는 김장김치로 변했습니다. 예상한 시간보다 빠르게 완성됐습니다.
“난 60kg라 그래서 엄청 오래 걸릴 줄 알고 사실 긴장도 하고,
어제는 준비가 모자랄까 봐 마음이 심란하기도 했는데 여럿이서 하니까 일도 아니네요”
박은주 통장님 이야기에 김현주 통장님도 공감하며 한 마디 하십니다.
“맞아요 그리고 확실히 많이 해 본 분들은 다르네요. 제가 모시고 온 김영자 어르신은
시력이 안 좋아서 오늘 같이 김장하는 걸 어려워하실 줄 알았는데 우리 중에 제일 잘 무치시더라고요"
완성한 김장김치는 방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뒤 함께 식사를 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함께 일 한 이웃이 둘러앉아 갓 양념한 김장김치에, 금방 삶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욕을 먹습니다. 역시 밥은 같이 먹을 때 더 맛있습니다.
옛날 김장과 요즘 김장
이번 골목잔치를 준비하며 새로 알게 된 것들이 많습니다. 김장에 사용할 배추는 최소한 하루 전부터 소금물에 절여 놓아야 하고, 그렇게 절인 배추의 물을 빼야 하는 것, 그리고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가 10가지는 가뿐히 넘는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식사 마치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새로 알게 된 것들을 이야기드렸더니 모든 어르신이 입을 모아 “요즘에는 아주 많이 편해진 거다”라고 이야기해 주십니다.
“우리 젊을 때는 정말 한 달도 전부터 김장을 준비하고 그랬어. 그래도 요즘에는 절여놓은 배추도 팔고, 양념도 조금만 더 해서 넣으면 맛있게 만들 수 있게 양념 속도 파니까 아주 편해진 거지. 이렇게 실내에서도 청소 걱정 없게 매트도 나오고 말이야”
이후로도 김장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김장이 편해진 것만큼이나 많은 어르신들이 공감하시는 이야기는 김장을 하며 나누었던 이웃 간의 정입니다.
“옛날에는 김장이 그냥 가족끼리 하고 끝내지 않고 온 동네 사람들이 만나는 날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이번 주는 00 댁 김장, 다음 주는 00이네 김장.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품앗이도 하고 그랬죠”
“품앗이라는 말 참 오랜만이네. 그렇게 모이면 만나서 일만 하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김장에 관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 한 어르신께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내 기억에는 7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 사람들도 이웃이 모여서 음식 만들어 나눠 먹고, 김장도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뒤로 집집마다 가스가 들어오면서 오늘처럼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는 게 좀 확 줄지 않았나 싶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정에서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그로 인해 이웃과의 관계는 줄어든 것 같다는 어르신의 이야기. 디지털 기기의 발전으로 사람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에도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골목잔치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 주신 김현주, 김영희, 박은주, 황희자 님께서도 한 마디씩 오늘의 소감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다 보니까 확실히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끈끈해지고, 손발이 잘 맞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크게 힘들이지 않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저는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혼자 계실 때랑은 다르게 밝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저한테도 힘이 돼요"
“이렇게 만든 김치를 우리끼리 나누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을에 계신 이웃 분들과 나눌 수 있다고 하니 더 좋네요"
“봉사를 오래 하면서 다양한 곳에서 김장 봉사를 했지만 이렇게 어르신들과 직접 만나,
대화 나누며 함께 만든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봉사보다는 함께 즐거운 시간 보냈다는 기분이에요”
관계의 마중물
소감을 나눈 뒤 어떤 분께 김치를 전달할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나니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함께 손을 모으니 정리도 금세 끝납니다. 서로 인사 나누고 헤어지는 어르신들을 보니 아침에 만날 때보다 서로를 친근하게 대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웃이 마주하고, 함께 할 일이 줄었습니다. 거기에는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도 한몫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어울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주팀은 요리를 주제로 여러 세대의 주민이 만나고, 함께 무엇인가를 하며 어울릴 수 있도록 골목잔치를 진행했습니다.
골목잔치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오고 가며 인사 나누는 사이가 되고, 더 나아가 서로를 돌보는 이웃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수주팀은 앞으로도 주민들이 만나고, 관계 맺을 수 있도록 돕는 마중물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마을이야기 > 고강1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달의 돌봄] 2022년을 돌아보는 배달의 돌봄 평가회 (0) | 2023.01.07 |
---|---|
[나눔] 2022년 제8회 호도스 사랑 나눔 바자회 (0) | 2023.01.07 |
[골목잔치] 함께 김장을 준비해요 (0) | 2022.11.28 |
[생활복지운동] 수험생을 응원해요! (0) | 2022.11.24 |
[커뮤니티매핑] 주민과 함께 만드는 고강1동 환경 지도 (0) | 2022.11.03 |